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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 멀쩡하게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하고, 평소보다 심하게 졸거나 사람을 헷갈린다면 가족들은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치매가 갑자기 심해진 건 아닐까?”
그런데 이럴 때 한 번 확인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최근 새로 먹기 시작한 약이 있는지입니다.
특히 감기나 알레르기 때문에 약을 먹은 뒤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면 약의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젊을 때 별문제 없이 먹었던 약이라도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약을 처리하는 능력이 달라지고, 뇌가 약물의 영향을 더 민감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기약 가운데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감기약이라고 해서 모든 약이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의해서 봐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일부 1세대 항히스타민제입니다.
콧물이나 알레르기 증상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약 가운데 클로르페니라민, 디펜히드라민 등의 성분은 항콜린 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노인의학회의 2023 Beers Criteria에서는 이런 일부 1세대 항히스타민제를 고령자가 가능하면 피해야 할 약물 목록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령에서는 약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속도가 느려질 수 있고 항콜린 작용으로 인해 혼란, 입 마름, 변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러 종류의 항콜린성 약을 함께 복용하면 인지기능 저하와 섬망, 낙상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복용 중인 약 전체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처방받은 약을 임의로 끊어서는 안 됩니다.
같은 감기약이라도 들어 있는 성분이 다르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필요한 약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의사나 약사에게 현재 복용 중인 약을 알려주고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갑자기 이상해졌다면 치매보다 ‘섬망’일 수도 있습니다
치매와 섬망은 겉으로 보면 비슷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치매는 일반적으로 인지기능이 서서히 저하되는 반면, 섬망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갑자기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 대화를 잘하던 어르신이 갑자기 날짜나 장소를 헷갈리고, 밤새 잠을 자지 않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졸고, 없는 것을 봤다고 말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원인은 약물 하나만이 아닙니다.
감염, 탈수, 전해질 이상, 통증, 수면 부족 등 여러 문제가 섬망을 일으킬 수 있고 약물이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치매가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라고 넘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특히 변화가 갑자기 시작됐다면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기약뿐 아니라 수면제·방광약도 함께 확인하세요
고령자에게 주의가 필요한 약은 감기약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 수면제와 진정제, 우울증 치료제, 멀미약, 과민성 방광 치료제 등에도 인지기능이나 균형감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방광 치료제에는 항콜린 작용이 있습니다. 잠을 자기 위해 사용하는 일부 약도 다음 날까지 졸림이나 혼란을 유발하거나 낙상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르신들이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약을 각각 처방받는 경우입니다.
내과에서 받은 약, 정형외과 약, 비뇨의학과 약에 약국에서 직접 구입한 감기약까지 더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비슷한 작용을 하는 약을 여러 개 복용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병원에 갈 때는 현재 복용 중인 처방약뿐 아니라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까지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약을 먹기 시작한 뒤 갑자기 혼란스러워하거나 심하게 졸고, 걷는 모습이 불안해지거나 넘어지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다면 복용한 약의 이름과 복용 시간을 기록해 의료진에게 보여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다만 갑작스러운 의식 변화나 심한 혼란, 말이 어눌해짐, 한쪽 팔다리 힘 빠짐 같은 증상이 있다면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리지 말고 즉시 의료진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어르신을 돌볼 때 약은 '많이 먹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함께 먹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평소와 전혀 다른 행동이 갑자기 나타났다면 치매가 심해졌다고 단정하기 전에 최근 감기약이나 수면제 등 새로 추가된 약은 없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
그 작은 확인이 원인을 찾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