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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못하셨지만, 그 선생님이 주는 밥은 드셨습니다

복지라라 2026. 9. 3. 00:36

목차


    어제 한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주야간보호센터에 계셨던 어르신입니다.

    치매가 많이 진행된 분이셨습니다. 말씀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고, 자신의 마음이나 불편한 곳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식사를 도와드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생님이 밥을 떠서 입에 넣어드리면 받아 드시는 듯하다가도 다시 뱉어내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선생님이 드리는 밥은 달랐습니다.

    그 선생님이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입에 가져다드리면 어르신은 거부하지 않고 받아 드셨습니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그렇게 식사를 다 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날 컨디션 때문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드리면 뱉어내시는데 유독 그 선생님이 드리면 잘 받아 드셨습니다.

    말씀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지만 그 모습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르신은 이 선생님을 믿고 계시는구나.’

     

    치매 어르신에게 식사를 떠먹여 드리는 요양보호사의 모습
    말씀을 하지 못하셨지만 오랫동안 함께한 한 요양보호사가 드리는 식사는 잘 받아 드셨던 어르신과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신뢰를 표현한 장면

    몇 년을 함께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 분의 인연은 우리 센터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이미 몇 년 동안 어르신을 돌봐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지금의 주야간보호센터로 옮기게 되었을 때 어르신도 선생님을 따라 이곳으로 옮겨오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보았던 모습이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았습니다.

    치매가 많이 진행되어 말씀을 하지 못하셨고, 우리가 말을 걸어도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이 무엇을 알고 계시는지, 어떤 마음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지켜본 모습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가까이 가서 식사를 도와드릴 때는 다른 사람이 도와드릴 때와 달랐습니다.

    몇 년 동안 자신을 씻겨주고, 밥을 먹여주고, 불편한 것을 살펴주고, 곁에 있어 준 사람.

    말로 “알아본다”, “기억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어도 어쩌면 그 선생님의 얼굴과 목소리, 손길에서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저에게 두 분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돌봄이라는 것이 밥을 먹이고 몸을 씻겨드리는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얼굴을 보고,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같은 손길로 돌봐드리는 시간이 하루하루 쌓이는 것.

    그것 역시 돌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두 분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결국 요양원으로 옮기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주야간보호센터에서 낮 동안 돌봐드리는 것만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갔고, 결국 가족들도 요양원 입소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르신은 우리 센터를 떠나 요양원으로 가셨습니다.

    저도 이제 그 선생님이 어르신께 밥을 떠먹여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양원으로 옮기신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드리는 밥은 뱉어내시면서도 그 선생님이 숟가락을 가져가면 얌전히 받아 드시던 모습이었습니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르신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어르신, 선생님을 알아보세요?”

    “이 선생님이 그렇게 좋으세요?”

    물어본다 해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어쩌면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고 계셨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을 잃어도 사람 사이에 남는 것이 있나 봅니다

    치매가 진행되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말을 잃기도 하고,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혼자서 식사하거나 생활하는 것도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센터에서 어르신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면 제가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표정이 달라지는 분도 계시고, 손을 잡아드리면 가만히 손을 맡기는 분도 계십니다.

    그리고 이 어르신처럼 유독 한 사람의 손길만 받아들이는 분도 계셨습니다.

    몇 년을 함께한 시간이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요양보호사로서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두 분을 보면서 한 가지는 배웠습니다.

    말을 주고받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뒤 그 선생님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몇 년을 곁에서 돌봤던 분이니까요.

    오늘도 센터에서는 식사 시간이 되면 어르신들 앞에 밥상이 놓이고, 선생님들은 한 분 한 분 식사를 도와드립니다.

    겉으로 보면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한 숟가락을 안심하고 받아먹을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이 쌓이기까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제 들은 소식 때문인지 그 평범했던 모습이 오늘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말 한마디 못하셨지만, 그 선생님이 주는 밥은 참 잘 드셨던 어르신.

    부디 편안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