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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동안 방 안에 은은한 향기를 틀어놓는 것만으로 기억력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단순한 아로마테라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니 실제로 미국 연구진이 60~85세 성인을 대상으로 6개월 동안 밤마다 향기를 맡게 한 뒤 기억력과 뇌의 변화를 관찰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라벤더나 로즈마리처럼 특정 향 하나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연구에서는 장미, 오렌지, 유칼립투스, 레몬, 페퍼민트, 로즈마리, 라벤더 등 여러 향을 번갈아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향기가 기억력이나 치매와 관계가 있는 걸까요?

밤마다 2시간씩 향기를 맡게 했더니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연구진은 60~85세 성인 43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잠자리에 들 때 디퓨저를 사용했습니다. 향기 자극을 받은 그룹은 하루에 한 종류의 향을 약 2시간 동안 맡았고, 7가지 향을 매일 바꿔가며 6개월 동안 사용했습니다.
사용된 향은 장미, 오렌지, 유칼립투스, 레몬, 페퍼민트, 로즈마리, 라벤더였습니다.
6개월 뒤 기억력을 검사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향기 자극을 받은 그룹과 대조군 사이에서 특정 언어학습·기억력 검사의 변화에 큰 차이가 관찰된 것입니다.
연구에서는 이 차이를 226%로 보고했습니다. 다만 이를 두고 '향기를 맡았더니 기억력이 226% 좋아졌다'고 단순하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참가자 전체의 기억력이 2배 이상 좋아졌다는 뜻이 아니라 특정 검사에서 두 집단 사이의 변화량에 차이가 나타났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뇌 영상에서도 차이가 관찰됐습니다. 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을 연결하는 신경 경로인 갈고리다발(uncinate fasciculus)에서 변화가 확인됐습니다.
냄새와 기억은 왜 이렇게 가까울까?
가끔 오래전 맡았던 음식 냄새나 비누 향을 맡는 순간 어린 시절이나 특정 사람이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냄새를 느끼는 후각계는 기억과 감정에 관여하는 뇌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후각 기능 저하는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변화만은 아닙니다.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일부 신경퇴행성 질환에서도 냄새를 구별하거나 알아차리는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반대로 생각하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후각이 약해지는 것과 인지기능 저하가 관계있다면, 여러 냄새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후각 자극은 뇌에 어떤 영향을 줄까?라는 것입니다.
이를 흔히 '후각 훈련' 또는 '후각 강화'라고 부릅니다. 여러 종류의 냄새를 일정 기간 반복해서 맡으면서 후각을 자극하는 방법입니다.
관련 연구들을 종합한 결과에서도 후각 훈련이 후각 기능뿐 아니라 일부 기억력이나 언어 관련 인지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 규모와 방법이 제각각이어서 아직 치매 예방법이라고 결론 내릴 단계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향기를 맡으면 좋을까?
앞서 소개한 연구에서 사용된 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장미
✓ 오렌지
✓ 유칼립투스
✓ 레몬
✓ 페퍼민트
✓ 로즈마리
✓ 라벤더
과거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소규모 아로마테라피 연구에서는 낮에 로즈마리와 레몬, 저녁에는 라벤더와 오렌지를 사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일부 인지기능 지표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됐지만 참가자 수가 적어 이것만으로 효과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로즈마리가 치매에 좋다', '라벤더를 맡으면 치매를 예방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최근 연구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특정 향 하나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향으로 후각을 꾸준히 자극했다는 점입니다.
집에서 따라 해보고 싶다면 향을 지나치게 강하게 사용하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향에 민감하거나 천식·호흡기 질환이 있는 분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 있고, 치매 어르신 중에는 익숙하지 않은 냄새 때문에 불안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에센셜오일을 피부에 직접 바르거나 먹는 방식으로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연구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적절한 방법으로 냄새를 맡게 하는 후각 자극입니다.
어르신들을 가까이에서 뵙다 보면 꼭 거창한 활동만이 뇌를 자극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을 듣고, 사람과 이야기하고, 손을 움직이고, 익숙한 음식을 맛보고, 좋은 향기를 맡는 것처럼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여러 감각을 계속 자극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향기만으로 치매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후각과 기억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다양한 향을 이용한 후각 자극이 인지기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앞으로 더 큰 규모의 연구에서 효과가 확인된다면 잠자는 시간이나 일상생활 속 후각 자극이 노년기 뇌 건강을 위한 간단한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은 관련 연구를 알기 쉽게 소개하기 위한 건강정보이며 치매의 예방·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