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첫사랑을 적어보세요, 어르신들의 답을 보다가 웃었습니다

복지라라 2026. 9. 25. 05:22

목차


    주야간보호센터에서는 어르신들과 여러 가지 인지수업을 합니다.

    숨은그림찾기를 하기도 하고, 숫자에 맞는 색을 찾아 칠하는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활동을 보면서 ‘어르신들이 하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해보면 제가 오히려 놀랄 때가 많습니다.

    주야간보호센터 인지수업 시간에 어르신들이 요양보호사와 함께 숨은그림찾기와 색칠 활동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
    어르신들이 인지활동지로 숨은그림찾기와 숫자에 맞춰 색칠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참 찾고 있는데 어르신은 벌써 찾으셨습니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다 보면 정말 교묘하게 숨어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림이 있습니다.

    저도 옆에서 같이 찾아봅니다.

    “어르신, 이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제가 못 찾고 있는 것을 어르신이 먼저 찾아내실 때가 있습니다.

    “여기 있잖아.”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짚어주시는데, 다시 보면 정말 거기에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납니다.

    “어르신, 저보다 훨씬 잘 찾으시는데요?”

    숫자와 색을 맞춰 칠하는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숫자마다 정해진 색을 찾아 하나씩 칠해야 해서 생각보다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어려워하시다가도 방법을 이해하시면 차근차근 완성해 가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다 끝낸 것을 보여주시면서 은근히 자랑하십니다.

    “나 잘했지?”

    그럴 때는 저도 크게 말씀드립니다.

    “그럼요. 정말 잘하셨어요.”

    그 한마디에 어르신 표정이 달라집니다.

    인지활동을 도울 때는 문제를 빨리 풀게 하는 것보다 어르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기다려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답을 바로 알려드리기보다 힌트를 드리고, 작은 것이라도 직접 찾아내거나 완성하셨을 때는 구체적으로 칭찬해드리면 활동에 더 즐겁게 참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어려워하시는 분에게 끝까지 같은 문제를 요구하기보다 그날의 컨디션과 인지 상태에 맞춰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합니다.

    문제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질문입니다

    인지활동지를 하다 보면 뒤쪽에 간단한 질문을 적는 칸이 있습니다.

    오늘 점심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적기도 하고, 오늘 좋았던 순간을 적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 옛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도 나옵니다.

    ‘첫사랑은 누구였습니까?’

    이런 질문이 나오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한참을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고, 웃기만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르신, 첫사랑 있으셨죠?”

    그러면 손사래를 치시면서 없었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꺼내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재미있게 본 것은 첫사랑이 지금의 남편이나 아내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꽤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를 첫사랑이라고 적으시는 모습을 보면 괜히 한 번 더 쳐다보게 됩니다.

    젊었을 때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수십 년을 함께 살아 지금은 백발이 된 두 사람.

    활동지에 적힌 짧은 이름 하나인데 그 안에는 제가 알 수 없는 긴 세월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어르신들과 함께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이 웃습니다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돌봄이라는 일을 조금 무겁게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힘든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숨은그림을 저보다 먼저 찾아내시고 좋아하시는 모습에 웃기도 하고, 색칠을 다 해놓고 어린아이처럼 자랑하시는 모습에 같이 기뻐하기도 합니다.

    첫사랑 이야기가 나오면 한마디씩 보태시는 이야기를 듣느라 수업시간이 더 재미있어질 때도 있습니다.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알게 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웃음도, 장난기도, 옛사랑의 기억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인지수업 시간이 좋습니다.

    어르신들의 기억을 돕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제가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과 함께하다 보면 제가 도움을 드리는 것보다 오히려 제가 웃고 배우는 순간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