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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생신잔치는 걸어서 하자” 어르신과 손가락 걸고 약속했습니다

복지라라 2026. 9. 23. 05:33

목차


    9월에는 생신을 맞으신 어르신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섯 분의 어르신을 모시고 조금 특별한 생신잔치를 열었습니다.

    그중 두 분 어르신의 따님은 외국에서 오셨습니다. 가족들은 휴대폰으로 생신잔치 모습을 촬영했고, 한 어르신의 막내 동생분은 수준급의 공연까지 준비해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셨습니다.

    노래와 웃음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은 화려한 공연도, 생신상도 아니었습니다.

    한 어르신의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주야간보호센터 생신잔치에서 휠체어에 앉은 남자 어르신과 요양보호사가 손가락을 걸고 내년에는 걸어서 생신잔치를 하자고 약속하는 모습
    생신잔치 날 휠체어에 앉은 남자 어르신과 요양보호사가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따뜻한 장면입니다.

    처음 오셨을 때와 너무 달라진 어르신

    어르신이 처음 센터에 오셨을 때가 생각납니다.

    인지저하가 상당히 심하신 것처럼 보이셨고 ,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시는 듯한 모습을 보이실 때도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함께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생신잔치 자리에서 바라본 어르신은 그때와 많이 달라져 계셨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계셨지만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운동 동작을 따라 하셨습니다. 팔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며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해 보이던지요.

    매일 곁에서 뵙다 보니 그 변화를 조금씩 지나쳐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 오셨던 날을 떠올리며 오늘의 모습을 바라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이 달라지셨는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센터장님도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저 역시 마음 한쪽이 뭉클해졌습니다.

    “내년 생신잔치는 걸어서 하자”

    나중에 원장님께서 어르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 내년 생신잔치는 우리 걸어서 해요.”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지금 당장 무엇을 얼마나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도 운동하면서 조금씩 힘을 길러보자는 따뜻한 응원처럼 들렸습니다.

    저도 어르신께 다가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우리 내년에는 걸어서 생신잔치 해요. 약속!”

    어르신과 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꾹 찍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는 그 약속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내년 9월, 정말 걸어서 생신잔치를 하실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보다 조금 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함께 생신을 축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일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수고가 모여 만들어진 변화였습니다

    오늘 어르신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센터에 오셨을 때와 지금의 모습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어르신 곁에서 애써주신 많은 분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어르신을 반갑게 맞이하고 식사를 챙겨드리는 일부터 운동을 권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돕는 일까지, 누군가는 늘 어르신 곁을 지켜왔습니다.

    하기 싫다고 하실 때 한 번 더 권해드리고, 힘들어하실 때는 기다려드리고, 작은 것 하나라도 해내시면 “어르신, 잘하셨어요.” 하며 격려해 드렸습니다.

    원장님과 센터장님,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해온 일들은 어쩌면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하루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의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의 운동이나 한 번의 프로그램으로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매일 건네는 말 한마디, 손 한번 잡아드리는 일, 하기 싫다는 분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는 일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수고들이 모여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갑니다.

    센터에서 어르신의 변화를 살필 때는 프로그램을 잘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평소와 비교해 참여 정도가 달라졌는지, 움직임이나 표정에 변화가 있는지, 다른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어떤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변화라도 꾸준히 관찰하고 종사자들이 서로 공유하면 어르신의 현재 상태를 이해하고 그날의 돌봄 방법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 이곳에서 배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순간을 만날 때마다 먼저 이 길을 걸어온 분들의 수고가 얼마나 컸는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어르신 한 분의 변화 뒤에는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다섯 분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는 날이었지만, 저는 오히려 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하나 배운 날이었습니다.

     내년 9월, 오늘 함께 애써주신 분들과 어르신의 생신을 다시 축하하며 손가락 걸고 했던 그 약속을 웃으며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