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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을 모시다 보면 평소에는 정말 온순한 분이 갑자기 화를 내는 순간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웃으면서 이야기도 잘하시고 프로그램에도 잘 참여하시던 분인데, 어느 날은 양치를 권해드렸더니 갑자기 표정이 굳었습니다.
“안 한다니까 왜 자꾸 그래!”
처음에는 저도 조금 당황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아 보이셨는데 무엇 때문에 갑자기 화가 나셨을까 싶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치매가 있으셔서 그런가 보다.’
‘원래 화를 잘 내시는 분인가?’
하지만 어르신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니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를 내는 행동에도 그분 나름의 이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싫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불편함
센터에서는 식사, 양치, 화장실 이동, 옷 갈아입기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어르신에게 무언가를 권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치매가 있는 어르신에게는 상황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사를 마친 뒤 “이제 양치하러 가실게요”라고 말씀드렸다고 해보겠습니다.
직원에게는 늘 반복되는 일과입니다. 하지만 어르신은 방금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나 지금 왜 이동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팔을 잡고 일어나게 하면 어르신 입장에서는 갑자기 자신을 어디론가 데려가려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싫어!”, “놔!”, “안 간다니까!”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한 번은 어르신에게 무언가를 권했는데 계속 싫다고 하셔서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하셨지만 조금 뒤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천천히 설명해 드리니 별다른 저항 없이 따라오셨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 어르신이 받아들일 시간을 드리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겠구나.
치매가 진행되면 기억력뿐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돌봄 과정에서 재촉하거나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을 하면 불안과 거부 반응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화가 아니라 아프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센터에서 어르신들을 가까이 모시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말로 “여기가 아파요”라고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평소보다 유난히 짜증을 내거나 이동을 거부하는 날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 않은가 싶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무릎이나 허리가 불편하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화장실이 급하거나 변비가 있을 때,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때도 평소와 다른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예민해진 어르신을 보면 저는 먼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디가 불편하신 건 아닐까?’
‘화장실에 가고 싶으신 건 아닐까?’
‘오늘 잠을 잘 못 주무셨나?’
특히 갑자기 행동이 크게 달라졌다면 단순히 치매 증상이라고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증이나 감염, 탈수, 변비, 수면 부족, 약물 변화 등 신체적인 문제가 행동 변화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와 달리 갑자기 심하게 혼란스러워하거나 사람과 장소를 잘 알아보지 못하고, 발열이나 통증 같은 다른 증상까지 나타난다면 의료진의 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왜 화를 내세요?” 대신 이렇게 해봤습니다
어르신이 갑자기 화를 내면 돌보는 사람도 순간적으로 당황합니다.
특히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아까 말씀드렸잖아요”라는 말이 나오기 쉽습니다.
하지만 치매 어르신에게는 우리가 조금 전에 설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맞고 틀린 것을 따지기보다 말을 조금 바꿔보려고 합니다.
“왜 화를 내세요?”보다는 “불편한 데 있으세요?”라고 묻고, 바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으시면 “조금 있다가 해도 괜찮아요”라고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때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좋아하시는 이야기를 꺼내거나 잠시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린 뒤 다시 권하면 아까 그렇게 거부했던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매번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데 정답 하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는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화를 내는 행동만 보지 말고 그 행동 앞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식사 전이었는지, 화장실을 가기 전이었는지, 목욕이나 양치를 권했을 때였는지, 주변이 시끄러웠는지 등을 살펴보면 반복되는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르신이 갑자기 화를 내시면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라고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왜 저렇게 화를 내실까?”가 아니라 “지금 이분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말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불편함이나 두려움이 화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살펴보게 됩니다.
치매 어르신의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행동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제가 어르신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며 조금씩 배우고 있는 돌봄의 한 부분입니다.
※ 이 글은 주야간보호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치매 돌봄 정보를 함께 정리한 내용입니다. 갑작스럽거나 심한 행동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에는 의료진과 상담해 신체적 원인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